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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데는 지혜롭고 악한데는 미련한 인물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시절, 난 기독교 동아리 생활을 했다.
기독교 동아리에서는 방학 때 마다 찬양집회를 했는데, 찬양과 함께 워쉽댄스를 추는 프로그램이 많았다.

그 당시 워쉽댄스라 하면 가장 신나는 곡은 roman 16:19였다.



선한데는 지혜롭고 악한데는 미련하라

선한데는 지혜롭고 악한데는 미련하라

평강의 주님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에 상하게 하리

평강의 주님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에 상하게 하리




드럼과 일렉기타의 신나는 음악에 맞춰 워쉽댄스를 추면 많은 박수를 받곤 했다.

그 때는 로마서 16장 19절의 말씀이 얼마나 심오한 구절인지 깨닫지 못했다.

막연하게 '선한데는 지혜로워야지~'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후로 어느덧 10여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서른살이 보는 세상은 고등학생이 보는 세상과는 많이 다른 듯 하다.

무엇보다 '선한 곳에 지혜로운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선하다는 것은 정도를 걷는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바른 길.

정도를 걸으면서 지혜롭기는 매우 어렵다.

반대로 악한 사람들은 마음놓고 지혜로울 수 있다.

뱀이 하와를 꼬시 듯 악한 곳에선 얼마든지 매력적이고 영악할 수 있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정치판으로 들어오면 이러한 상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악한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뻔뻔하게 말한다.

"경제를 살려야 합니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해야 합니다."

"빨갱이를 몰아내야 합니다."

"일자리를 창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저를 뽑아주셔야 합니다.



결과에는 관심이 없다. 어짜피 잊혀질테니깐...

표만 얻는다면 4년간 편하게 권력을 만끽하며 살 수 있을테니깐~



국민이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은 한도 끝도 없이 뻔뻔해지고, 악해질 수 있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라며 무릎을 꿇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들에게 무릎은 아무것도 아니다.


표를 얻고 나면 그들은 한 없이 거만해진다.

소통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미 나에게 줄 것이 없는 자들이기에~



스스로 선하다 자칭하는 정치인들은 어떤가?

매번 진다.

지고 또 지고 또 진다.

하지만 늘 당당하다. 계속 지면서... 자신들이 지기 때문에 국민들은 지쳐가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너무도 뻔뻔하게 당당하다.

자신의 잘못으로 진 것이 아닌냥 말한다.

"누가 어쨌기 때문에... 그들이 반칙했기 때문에... 언론이 잘못됐기 때문에..."




때문에 노무현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선하면서도 영리한,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국민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지만 강대국의 수장들 앞에서는 한 없이 당당한 대통령.

선거 전날 같은 편이라 생각한 사람이 배신을 해도 끝까지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인물.

선한데에 지혜로울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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